지리산
(중산리-천황봉-대원사)
오랜만에 지리산으로 오른다.
삶이
어렵고 힘들 때 언제나 훌쩍 떠나고 싶어도 시간적 여건이 맞지 않아 허둥대며 겨우 떠나는 날이 비로 인해 온 대지가 젖어버려 고뇌에 찬 삶의
잔해를 씻지도 못한 체 그렇게 훨훨 떠난다.
중산리에서 올라본다.
매표소 입구는 옛날과 아주 다른 모습을 하고있다.
도회적인 건물이 들어서고 주차장과 화장실이 현대적으로 만들어져 있어
고행을 하는 이들에겐 편리해 졌다.
안개속에 잠긴 새벽 여명이 밝기 전이라서 발걸음 놓기가 여간 거북스럽지가 않다.
안개에 젖은 나뭇잎 들이 조그만 바람에도 후두둑 물방울을 그대로 쏟아 잠이 덜 깬 머리를 때려 정신이 번쩍 들게 한다.
준비 안 된 랜턴과 카메라의 배터리 얼마나 아쉬운지 모른다.
이런 것들은 모두가 기본 장비인데 다음에는 잘
챙겨야지.
칼
바위를 지나자 계곡의 물소리도 약해지고 안개비도 약간씩 걷히기도 한다.
무박
산행이라 발걸음과 머리의 어지러움 증세가 나타나더니 고도를 높일수록 힘이 든다.
1400m지점에 있는 법계사, 로타리 산장에 이르니 언제 그랬나 싶을 정도로 구름이 걷히고 햇볕이
나고 주위의 전망도 좋아 짐을 풀고 아침식사를 한다.
식사 후 찬란한 아침 햇살을 받은 고려시대의 양식인 법계사 3층석탑을 돌아보고 대웅전에 내려서니 부쳐가 모셔지지 않았다.
여기에도 부처님 진신 사리를 모시고 탑쪽으로 광창을 내고 사리를 모신
탑에 불공을 드리는 적멸보궁 형태를 취한 곳이다.
법계사를 돌아 나와 산에 오르니 구름들은 발아래서 놀고 우리들은 그 위에서 놀고 있었다.
천왕봉 바로 아래 바위들은 옛날 그대로 운치를 자랑하고 있다.
더디어 정상 맑은 햇빛이 비치니 세상은 더욱 아름다운데 남원쪽으로 시야가 터지고 칠선계곡의 푸른
자태가 발아래 보인다.
지리산 천왕봉 표지석과 조금 가까이 하여 친해보고 흔적을남긴다.
다시 중봉으로, 푸른 녹음과 고사목이 어우러져 묘한 감정의 대립을 자아 내게 한다.
마치 삶과 죽음의
대비처럼………
지루해서 지리산인가 치밭목까지 이렇다 할 아름다운 바위도 없고 오지게 푸른 구상나무와, 속빈 주목나무와 잡목의 천국을 이루고 있다.
치밭목 산장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내리막길을 내려오면 좌측 숲속
골짜기로 이단으로 된 펑퍼짐한 바위에서 떨어지는 무재치기 폭포를 지나면 원장단 계곡을 오른쪽으로 끼고 족히 4시간 이상을 걸어야 밤밭골에
이른다.
민족의 애환이 서린 지리산 마지막 여자 빨지산이 살았다던 이 계곡 끝간데 없이 수해를 이룬 계곡과
산, 좌와 우를 모두 포용한 가슴이 넓은 이 언저리에 수많은 고초와 삶의 어려움을 피해 들어온 민초들, 그래도
살아보겠다고 질경이처럼 밟히면서도 또 일어나는 끈질긴 생명을 유지해온 한 많은 사람들을 지켜준
산이다.
밤밭골에 내려오면 대원사 계곡이 덕천강으로 이름이 바뀌고 지리산 언저리에서는 제일 수량이 많은
골짜기로 바위도 많고 수려하기 이를 데 없는 골짜기로 변해버린다.
덕천에 이르면 조선시대의 유학자로 이름 높은 남명 조식선생의 위패를 모신 천왕봉이 보이는 덕천서원이
있지만 항상 시간에 쫒겨 지나치곤 한다.
밤 밭골에서 주차장까지 족히5km는 되니 걷는 것도 여기쯤 오면 지친다. 지나가는 차 손들어 세우고 주차장까지 부탁하면 인심이 좋아 잘 세워 준다.
덕천강은 축지법으로 감상하는 것이 심신에 피로를 들어 주는 동
지리산의 등산 비법 이니, 무리는 건강을 헤친다.
2003.09.10 정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