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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조목종

황문부.황 응성,황윤후

黃州 篇

 翰林公  황문부

 고려 문신 황주 황씨시조 문과에 등과 하여 直院을 그쳐  翰林院 學士가 되었다.

 문헌: 한국 고사 대전. 전고대방.


 府使 東皐 공  황 응성

 조선 문신 자는 경우  호는 동고 본관 황주 1500 85년 선조 18년 을유년 式年文科 병과로 급제하여 벼슬이 부사에 이르렀다. 

문헌 한국 고사 대전


 義州府尹 月渚公  황윤후

 1587년 선조 20년  정해년~ 1648년 인조 26년 무자년 조선 문신 자는 희적 본관은 황주 부 4  응성의 아들로서 평양 출신이다.

 1613년 광해군 5년 계축년 生員科 進士 兩試에 합격하였고 1625년 인조 3년 을축년의  順陵 參奉이 되고

 그해에 別試文科에 병과로 급제한 후 1627년 인조 15년 정묘년 정묘호란의 가동과 마을 장정 수십 명을 이끌고 참전 코자 떠났다가  최명길 등이 講和를 주장하여   和議가 성립되고 임금이 강화로부터 서울에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귀가 하였다.  이듬해에 성균관 典籍이 되고 이어 判官, 縣監 郡守 등을 거쳐 世子侍講院 文學이 되고 1632년 인조 10년 임신년 예 戶曹正郞이 되고 1634년 인조 12년  갑술년에  司憲府掌令이 되었다.

 1636년 인조 14년 병자년  龜城府使가되어  副元帥의 從事官을 겸임하였다 이해 겨울에 丙子胡亂이 일어나자 鐵甕城을 수비하는데 크게 공을 세웠다 난 후에 충렬공 황일호의 후임으로 義州府尹을 지냈다.

 문헌 인조실록 국조인물고 한국 인명대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