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산993m 여기서 서쪽으로 바라보면 오를 만한 산이 보이는데 이것이 바로 백화산이다. 수봉리에서 서쪽으로 바라보면 옥동서원과 나지막한 산줄기 끝에 백옥정이 단아하게 보이고 정자 아래 맑은 내가 흘러 풍류를 즐길 마음이
생긴다. 고려가 망하자 두문동에 은거했으나, 이성계(李成桂)의 간청으로 태조때 성균관학관으로 세자우정자(世子右正字)를 겸임, 그 후 많은 직책에 두루 역임했다. 민무휼(閔無恤) 등의 횡포를 제거하고, 그 후 이조판서로 세자 폐출(廢黜)을 반대하여 공조판서로 전임되었으며, 이어 한성부판사(漢城府判事)가 되었다. 충녕대군(忠寧大君:世宗)이 세자로 책봉되자 이를 반대하여 서인(庶人)이 되고 교하(交河)로 유배, 다시 남원(南原)에 이배(移配)되었으나 세종 때 풀려나와 우의정, 좌의정, 영의정에 올랐다. 벼슬에서 물러날 때까지 18년간 영의정에 재임하면서 농사의 개량, 예법의 개정, 천첩(賤妾) 소생의 천역(賤役) 면제 등 업적을 남겨 세종의 가장 신임받는 재상으로 명성이 높았다. 또한, 인품이 원만하고 청렴하여 모든 백성들로부터 존경을 받았으며, 옥동서원(玉洞書院) 등에 제향되고 있다. 북반부는 상주시 모서면(牟西面)과 모동면(牟東面)의 경계가 되고, 남쪽에서는 모서면과 영동군 황간면(黃澗面)의 경계가 되어 있다. 백화산(捕城峰:993 m)·주행봉(舟行峰:874 m) 등이 이어져 솟아 있고, 고도 700 m 이상의 능선이 연속되어 지세가 험준하다.
특히 모서면 쪽의 서쪽 기슭이 급한 경사를 보며 선상 지대에 이룬 잡목숲들이 어우러져 가을단풍이 절정을 이루었고. 산기슭의 모동면
수봉리(壽峯里)에 신라 최고의 내외석성(內外石城)인 백화산성(또는 금돌성)이국방유적으로 현재 80m가 신축되있다, 수봉리에서 계곡을 따라 계속오르다가 좌측 리본이 많이 붙은 계곡으로 오르면 지표조사가 끝난 왕궁터가 보이고 좌측 옆으로 나오면 무속인 터가 보인다 계속 옆으로 나오다 다시능선 안부에 올라서면 금돌산성이다. 백화산 정상을 오르기 전 바위봉은 동쪽 조망을 하는데 일품이요, 서쪽은 능선에 서면 모서의 일대를 그대로 내려다 본다.
정상에는 백화산이라는 조그만 비돌이 서있고 남쪽으로 주행봉 과 추풍령 쪽이 조망된다. 2001.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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