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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로봉

이슬비 속으로 아무런 대책없이 도시락 하나 배낭에 넣고 떠난다.

실연에 열병을 앓는사람이 고뇌를 잊어려고 깊은 절망감에 빠져 그대로 몸을 자연에 맡기고 바람처럼 그렇게 흐르고있다.

 

고도600m의 샘재는 옛날의 샘재는 아니였다.

수목원이라는 명목으로 부로 호화롭게 단장되고 지금도 자연을 돈으로 바르고있다.

주위에는 다양한 나무들이 초등학교 신입생 처럼 이름표를달고 줄지어서있다.

전시관 뒸쪽 시멘트 포장길을 따라오르다 좌우측 시멘트길을 다 버리고 등산로로 접어 들어 고도를 조금씩 높여가면 굴참나무 떡갈나무의 세상으로 바뀐다.

 

매봉 이정표 고도800m 이를 정점으로 오르고 내리기를 몇번이나 반복한다.

습도가 높아 땀이 범벅이되어 꼴이 말이 아니다.

고행길을 자처한 일이라 누구에게 원망 할 일도 없다.

걷기를 두시간여,시명리 (時鳴里) 닭울음 소리로 시간을 알렸다는 마을인가 이정표가 서있고 길이 합류된다.

 

얼마간에 시간을 두고 오르니 향로봉 둥근 자연석 표지석과 철구조물의 안내판과 시멘트로 발린 핼기장, 유난히도 비가 많이 내리는 2003년의8월의 마지막 날 우중산행, 향로봉 정상에서 식사를 한다,

 

흐린 날씨라서 저 동해와 주왕산 쪽은 안개 구름속에 들어 앉아 볼수가 없다.

시명리로 내려온다.

가파른 비탈길은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 이다.

비로 인해 불은 물이 개울에서 소리를 높인다,

시명리 1960년대 후반 이념의 대립이 첨예화 될 무렵 이곳 사람들은 자연과 함께 정들었든 이곳을 버리게 했다.

 

천심으로 자연과 함께 더불어 살든 이분들은 속세에 찌든 도회로 흘러들어 갔을 것이다.

이젠 집터와 과일나무 몇 그루만 남아 있고 잡초와 잡목으로 폐허로 변해 버렸다.

 

저아래 계곡의 포말을 이루며 흘러가는 본류 물소리를 들으며 양지쪽 산길을 찾아 오르 내리길 몇번 수고롭지만 불은 물을 건너지 않기 위해 자청했으니 어쩌랴.

 

연산폭포 위 바위 위에서 내려다 본다.

장관이다.

하얀 포말과, 물보라, 사진을 찍을려니 물보라로 찍을수가 없다.

하염없이 내려다 쏟는 력동적인 모습 웅장한 소리와 함께 내려 꽂히는 물보라 그 주위에 솟은 절벽들 여기가 청하골의 핵심 , 안개 속에 신선이 되여 자연이 펼치는 깊이있는 중저음의 교향악과 이슬비 속에 맞이하는 운치 있는 자연의 심연에서 세샹의 찌든 고뇌를 녹여내는 그속에 내 자신이 동화 되여 있다는 것을 애써 고집하지 않드래도 나는뻘써 그속에 동화되어 침잠의 세계어서 함께하고 있었다.

 

청하골은 조선의 화성이라 일컫는 화가 겸재 정선을 영조대왕이 경북 제일경으로 알려진 청하 현감으로 발령하여 지금내가 앉아있는 이 골짜기를 붓으로 화폭에 담아 세상사람 들에게 보여 준 곳이니, 진경산수 그자체를 진면목으로 유감없이 보여 주는 내연산, 그속에 내가있고, 비속에서 보는 이체로운 모습 이것이 바로 우리 자연의 풍경이 아닌가 천인단애의 깎아지른 절벽 늙은소나무, 그기에 웅장하고 아름다운 폭포가 쏟아지는 장관을 오늘에서야 진면목을 볼 수 있었으니.........!

 

우리가 사는 가장 가까운 곳에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 있어도 느끼지 못하고 완상 할 시간적 여유를 못느끼는 우리의 환경이 늘 안타깝기 만하다.

자! 시간 나면 경북 제일경으로 겸제 정선의 화폭으로 들어가 봄이 어떤가?

                  

                                     2003.9.2 

 

                                                             浮      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