國樂大家 黃孝誠先生
국악가 본관은 창원 의원군 거정의 아들이다.
공은 才質이 過人하고 性品이 침착하였다. 樂譜에 능통하여 樂器의 六律 八音의 高低淸濁을 조정하고 樂譜, 樂論.樂書등 書冊을 著述하여 樂界에 貢獻이 적지않았다
용재총화에 황효성은 다년간 禦侮將軍에 재직한바 있는악보의거장이다.라고하였다.
세종께서 우리나라의 악보가 미비한 점을 항상 유감으로 여기어 오던차 공의 악보가 발표되자 이로써 국악의 발전에 많은 참고로 삼았다.
종래의 악기를 개량하여 새로운 악기를 제작하고 악원의 儀禮節次등에 대비하여 공헌한바 많았다.
功曹參判에 贈職하였다.
문헌: 창원황씨족보, 용재총화
通禮院 奉禮公 黃전
1391년 高麗 恭讓王삼년 신미년~1458년 세조사년, 무인년조선 문신 자는형보 본관은 창원 고려 大相 石柱의 9세손이요 高麗 奉直郞 處中의 아들이다
1426년 세종8년 병오년에 通禮院奉禮가 되었는데그후 벼슬을 사퇴하고 順興屛山에 隱居하고 있다가 1456세조2년 병자년에 錦城大君 瑜가 死六臣事件에 연루되어 順興에 안치되어 있을때 하루는 米두중에 銀塊를 감추어 공에게 보내면서 만나기를 청하는지라. 공은 병이나서 갈수없다고 辭讓하고 말하기를 일찌기 서로의 舊誼가없을뿐아니라. 地位도 다르므로 나는 그물건을 받을수가 없다하고 사퇴하였더니 얼마아니되어 端宗復位運動事件으로 錦城大君이 賜死되는등 화가일어났으나 공은 화를 면하였다.
1503년 중종30년 을미년에 가선대부공조참판판에 증작 되었다.
창원황씨 족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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