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루
단군과 역대 왕 조의 시조를모신곳, 천진궁
천진궁
단군상
바위의 갈라진 모습이 꽃과같다네요
박뭉관 앞의 석재들
문인석?
탑재도보이고
맷돌
복련대
파손된 복련대
맷돌
탑재
사면대사 동상
아랑초상
박물관내부
아랑각내의 아랑 영정
아랑의 전설
조선조 명종때(1545~1567) 이고을 부사의 딸로서 성은 윤씨 이름은 정옥또는 동옥이였으며 방년 18세에 재예와 자색이 빼어난 규중처녀로서 태어난지 겨우 수개월에 어머니를여의고 유모의 품에서 자라나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한 외동딸이였다.
어느날 유모의 꾀임에 빠져 보름달을 구경하려 영남루에 나왔다가 통인 주기로부터 정조를 강요당하게 되자 죽음으로서 항거하여 정절을 지켰다.
외동딸을 잃은 아버지는 실의에 빠져 서울로 돌아간후 후임 부사들이 부임해오는 첫날밤에 의문의 죽음을 당하게 되자 아무도 밀양 부사로 부임하는이가 없게되었다.
이때 이상사라는 기개가 높은 사람이 고을 부사로 자칭해 옴에따라 지혜를빌어 원한을 풀게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아랑사는 1878년 밀양부사로 재임한 연서 서석균의영남루 제영에노승원(老僧院)과 열녀사(烈女祠)라는것이 전해지고 있었으니 그이전 부터 이지역민들이 아랑의 억울한 죽음을 애도하며, 영남루아래 대나무 숲속에 사당을 세워 혼백을 위로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의 아랑사는 제향을 올릴수있는사당으로 중건한것이며, 아랑영정은 1963년 박정희대통령의 영부인 육영수 여사께서 이당 김은호 화백의 솜씨를 빌어 제작하여 직접 하사한것이다.
아랑의 제향은 매년 밀양아리랑 축제때 행사를 통하여 선발된 모범 규수들이 제관이되어 4월 16일 제를 올리고있다.(관광정보에서발췌)
밀양강
영남루
능파각
영남제일루
조선시대의 3대누각 진주의 촉석루 평양의 부벽루 밀양의 영남루로서 명루로 알려져있다.
또한 영남루에 올라보는 풍광은 조선 16경중의하나이다.
조선후기의 목조건물인 영남루는 그연원이 신라시대로 거슬러올라가 신라 경덕왕때(742~765) 영남사 부속 누각에서 유래 되었고 고려 공민왕때 밀양 부사로 김주라는 사람이 누각을 신축하여 영남루라하였다.
현재건물은 1843년 이인재 부사가 중건한것으로 조선시대부터 촉석루 부벽루와함께 우리나라 3대명루로 일컬어왔다.
영남루이서본 밀양강
본루와 좌측의 능파각, 우측엔 침류각을 거느리고 정면 5칸 측면4칸 2층 다락형으로 오모로보면 웅장한
기풍을 자랑한다.
침류각과 본누각사이에는 월(月)자형 계단으로 통로를 연결하여 건물의 배치와 구성이 특이하다.
밀양의 상징이된 영남루는 낙동강의 지류인 밀양강의 절벽위에 올라앉아 있어 경관이 수려하고 1931년 조선 16경중에 하나로 선정되었다.
영남루는 주변의 조망과 건물자채의 특이한 구조 자체가 볼거리이며 기둥과 기둥 사이를 연결한 충량과 퇴량은 물론 대형 대들보가 모두 화려한 용신으로 조각되어 있는가하면 건물 내부를 장식하고있는
당대의 명필가와 대문장가들의 시문 현판 들이 즐비하다
그중에서 특히 유명한 것은 1843년~1844년까지 이건물을 중수할 당시 이인재 부사의 첫쩨아들 이증석(11세) 둘쩨아들 이현석(7세)가쓴 영남 제일루와 영남루 현판이있다.
누마루 난간에 기대어 휘 돌아가는 영남루 아래로 돌아 나가는 밀양강의 풍광은 그자체가 하나의 그림같은 정취이다.
여기에 앉으면 옛선인들의 멋스러움과 풍류를 즐겼던 모습이 저절로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