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매산
황매산행기
합천호의 잔 물결속에 어린 연초록의 아름다운 산 그림자.
호반을 지나는 풍경은 언제보아도 아름답다.
모산재 식당에서 영암사로 접어 든다.
영암사는 황매산의 남쪽 천맥에 있으며, 영암사라는 절 이름도 주민들 사이에서 구전되어 오지만 자세한 연혁은 전하지 않는다.
다만 탁본으로 남아 전하는 <적연국사자광탑비(寂然國師慈光塔碑)의 비문을 통하여 고려시대 이곳에 영암사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절터에는 금당터 ·서금당터 ·중문터 ·회랑터 등의 건물터와 3층석탑 쌍사자석등. 귀부 ·석조 ·기단 ·아름다운 무지개 계단과 금당으로 오르는 조각 계단 등이 남아 있다.
발굴 조사시에는 통일신라시대부터 고려시대에 이르는 각종 기와편과 토기편, 금동여래입상이 발견되었다 한다.
현존하는 유구와 유물들로 보아 서부 경남지방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석조유물이 잘 보존되어 있는 사찰이었음을 알 수 있으며,
신라 후기에 창건되어 고려 말까지 존속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석조의 아름다운 문양과 예술적 가치는 산뜻하고 미려하며, 신라의 서울 경주에 있는 유물과 비슷하여 높이 평가 받고 있다.
그러나 산세가 수려하고 아름다워 산만 처다보고 가다가는 자칫 보지못하고 지나치는 수가 있으니 주의해야 할일이다.
영앙사를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모산재의 줄기는 화강암 바위산으로 기암절벽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거북바위와 황포돗대 바위는 그산을 다 오를때까지 눈에 거슬린다.
아래로 내려다보면 거북이가 못으로 들어가는 형국으로 누구나 보아도 명당터임을 알수있다.
영암사지에도 비석의 기단으로 거북을 만들어 사용했으니 이지역은 거북과 연관이 많이 있지 않은가 생각된다.
가파른 산기슭 철재 계단을 타고 오르면 모산재에 이르는데 무지개 명당터는 한국 제일의 명당터로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용마바위가 있어 비룡상천하는 지형으로
옛날부터 이곳에 묘를쓰면 천자가 태어나고 자손대대로 부귀영화를 누리는 반면 온나라가 가뭄으로 흉작이 들어 살수가 없으니
아무리 명당자리라 하여도 묘를 쓰지 못하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지금도 이자리에는 작은 연못이 있고 안내문이 써져있다.
북쪽으로 바라보면 황매산 정상이 용의 등 비늘처럼 꿈틀그리고 그아래 수만평의 평지들이 펼쳐진다.
산업화 물결을 타고 유신시대의 산물로 농업입지를 기반하여 축산업을 이러키려던 산물로 지금은 버려져 겨우 명맥만 남아있는 곳으로 버려지다싶이 된 곳이다.
다행히 신은 그냥 버려두지 않고 천상의 보이지 않는 신의 손으로 꽃밭을 가꾸어 놓으니 이 또한 얼마나 신기한 일인가?
보는 이마다 탄성과 환호를 지르니 정말 자연의 힘이 위대하지 않은가? 인간으로 누가 그렇게 큰 꽃밭을 그렇게 아름답게 가꿀것인가?
에돌아 황매산 정상을 올라 돌아나오면 좌측 산아래 함천호가 가물거리고 지나온 길을 돌아보면 철쭉의 붉은 빛이 아른 그린다.
인간이 자연에 도전하여 망쳐버린 땅에 신은 그래도 버리지 않고, 신비하게도 버려진 땅을 잘 가꾸어서 그많은 아름답운 꽃을
다시 인간에게 돌려주니 인간은 그것을 보고 모두가 탄성을 지르니 참 아이러니 하지 않은가?
2006.5.10
浮 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