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산

대야산

qndns 2005. 3. 5. 11:32






대야산 931m

위치:충북 괴산 청천면, 경북 문경 가은읍

백두대간을 경계로 경상도와 충청도를 가르는 대야산이 주변에는 너무나 아름답고 경치가 빼어난 곳이 많아 수많은 관광객과 산 꾼을 불러들이는 데,

 

 

 

 

 

 

 

 

 

 

 

 

 

 

 

 

 

 

 

 

충청에는 충청도 선유동 계곡 경상도에는 경상도 선유 구곡으로 예부터 잘

알려져 있고 속리산 국립공원안에 흡수되어 있어 화양동 계곡이나 속리산에 눌려   빛을 못 보고 있지만, 아기자기한 바위나 화강암 반석위로 흐르는 옥류는 오히려 화양계곡 물보다 맑고

바위의 석질이나 색갈도 속리산의 화강암보다 나으면 나았지 못 하지는 않다.

문경쪽에서 괴산으로 넘어가는 길을 따라 가다 보면 선유동 골짜기를 지나쳐 가면 벌 바위라는 마을 입구에 이르러 용추계곡을 따라 오르면 몇 집의 상가가 나오고 여기서부터 등산이 시작되는데 좁은 골짜기지만 깨끗한 맑은 물이 암반 위로 흘러 내리는 것을 보면 오월의 신록 속으로 곧 마음이 상쾌 해진다.

대야산 하면 뭐니뭐니 해도 용추폭포인데 거대한 반석 자체로 이루어져 있고 수수만년 흐르는 옥수로 갈고 닦아 만든 자연의 작품으로 보는 이 마다 감탄 하지않는 사람이 없다. 낙차는 별로 높지 안지만 육감적으로 생긴 화트 모양의 용추는 비색의 물빛과 조화를 이루어 찬탄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절묘한 풍광을 만들어 내고있다. 이를 뒤로하고 계곡을 따라 오르면, 달 밝은 밤이면 물에 비치는 달이 너무나 아름다워 월영대라는 넓은 암반이 펼쳐지는 곳이 나오고 다래골로 이어져 밀재에 이르게 된다, 능선에 올라서 고래바위를 지나 정상에 오르면 저 멀리 문경쪽으로 굽이쳐나간 대간과 충청도의 수많은 산과 산들이 겹쳐 너울을 이루는 장관을 보게 된다. 바위산으로 되어있는 이산은 충청도쪽에서 불어오는 겨울 바람과 설해로 나무들은 풍상을 겪어 등 굽고 구부러진 것들이 많다.

대간을 따라 불란치재로 나갈 수도 있지만 바위와 낭떠러지로 위험한 곳이 많으므로 자일이 필요한 곳이다. 피아골로 내려서면 월영대에 이르러 원점회귀하면 산행은 끝난다.

선유동에 들기 전 가은읍 완장리에 우리역사에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는 분이 여기에서 출생했으니 바로 항일 애국지사 이강년 선생 이시다.


선생은 1858년에 출생하였고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을 역임하였고 갑신정변 때 물러나 항일의병을 일어켜 도창의대장에 추대되어 문경, 갈평, 죽령, 단양 등지에서 대승을 거둔바 있고 청풍 작성 전투에서 피체되어 서대문 감옥에서 순국 하셨다,국난을 당하였을때 많은 업적을 남기고 돌아가신 분으로 근래에 기념관이 설립되어 지나는 이들에게 애국의 한 장의 역사를 엿보게 하고있다

문경 선유구곡은 용추에서 흐르는 물이 선유동으로 이어져 과히 신선이 놀만한 동천을 이루고 있는데 옥석대,난생뢰,영귀암, 탁청대, 관란담, 세심대, 활청담, 영차석,옥석대 등 아홉구비의 아름다운 계곡을 휘 감아 도는 풍광을 자랑하고 있으며 학천정 바위 뒤에는 산고장수 앞에는 선유동이라는 글씨가 각석 되있고, 이는 모두 고운 최치원 선생의 글씨로 알려져 있다. 또한 이 고장에는 후 백제왕 견훤의 출생지로 알려진 이곳은 견훤의 출생 신화가 있는 곳으로 알려진 곳으로 그야말로 산자수명한 곳이다    

견훤의 탄생설화를 보면 
삼국사기 열전 견훤전(三國史記 列傳 甄萱傳)에 견훤은 상주 가은현(尙州 加恩懸) 사람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견훤의 출생지라고 전하는 갈전 아개동(阿介洞)의 부유한 가정에 규중처녀가 있었는데 밤이 되면 아름다운 소년이 나타나 처녀와 부모 몰래 몇 개월이나 동침을 하니,처녀는 배가 부르게 되어 하는 수 없이 부모에게 사실을 이야기 하였다. 부모는 딸에게 그 소년이 오거든 옷자락에 바늘로 실을 꿰어 매라고 일러 놓고는 다음날 실오리를 따라 가니 금하굴로 들어간지라 굴 속에 들어가 보니 커다란 지렁이 몸에 실이 감기어 있었다. 10개월이 되어 처녀가 옥동자를 출산하였으니 그가 후에 견훤이라고 전한다. 그 후로 금하굴 속에는 풍악이 울리는 소리가나 구경꾼이 쇄도하니 동리에 피해가 심하여 그 굴을 메워 버렸더니 풍악소리는 없어졌으나 동리에 불상사가 자주 일어나 금하굴을 원상 복구하였다고 한다.

              2004-06-23

                           浮 雲   정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