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산

장안산

qndns 2005. 6. 21. 14:28

장안산
전북: 장수군
10월의 초순 날씨 흐림 아침 일찍 출발한다.

88고속도로를 타고 거창으로 들어간다.
합천에서 부터 거대한 산줄기가 보이기 시작한다.

우측엔.가야산,좌측으로 침봉 오도산 합천 터널을 지나 우측으로 가조의 의상봉 ,거창의 금원 기백 황석 덕유산에서 내려온 지맥들이다.

산이 높으니 골이 깊어 물이 맑고 숲이 울창하다.
안의 계곡은 또 얼마나 수려한가, 농월정 거연정 동호정 군자정, 옛날 함양의 선비들이 이토록 아름다운 자연 경관에 묻혀 풍류를 즐기든 곳이 였니……..!
안의 계곡은 정자의 본산 이라 해도 좋은 곳이다.
함양의 서상면을 지나 60령 고개를 오른다.
덕유에서 내리 뻗은 잔등을 넘어 장수로 넘어가는 곳 . 육십령 고개

육십령 휴게소

장수 이곳은 논개의 고향으로 변영로가 쓴 논개의 시비가 서있는 곳이며 장계에는 논개의 생가가 있었고 지금은 성역화 시켜 예전의 초가삼간은 없어지고
옛 동상은 진주가 가져 갔단다.지금은 대규모의 관광 단지로 탈바꿈했다.
주논개는 사주가 술년, 술월, 술일, 술시로, 술은 개를 의미하므로 이름을 개로 지었다 한다.
논개는 장수현감 최경회의 사랑을 받게 되었고 최경회가 승진하여 경상우도 병마절도사에 재수되자 진주로 따라가게 되었다

논개 영정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군관민이 합심하여 불사항전을 하였지만 왜적에게 진주성을 함락 당하고 평생 의지 하려든 사랑하는 최경회 마저 전사하게 되니 울분을 참지 못하고 장군의 원한을 풀어 주기위해 왜적이 승전 연회를 하는 날 촉석루에 기생으로 가장하여 들어가 연회가 무르익을 즈음 왜장 개아무라구로스케를 의암으로 유인하여 목을 끼고 남강 푸른 물속으로 떨어져 왜장과 함께 18세의 꽃다운 나이로 나라를 위해 민족혼을 일깨우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분이다.
시신을 고향으로 옮기는도중 당시는 전쟁중이라 장수는 전화의 해를 입을 까 두려워 장수에 오지 못하도록 막으니 그의묘는 함양군 서상면 육십령 고개아래 뭍히게 되었다.

남편과 국가를 위해 초개같이 몸을 던졌으니 후세의 모든 사람에게 추앙을 받도록 사당을지어 재사를 지내게 했다.

논개 성역지
논개의 생가를 지나 오르면 포장도로가 끝나고 깨끗한 현대식 화장실을 지나 무령재를 오르면 좌측으로 대간이 흘러나가다 백운산을 이루고 지리산을 향해 뻗어나가고 우측지맥이 장안산으로 흙으로 된 순한 산이다 좌측으로 등산로를 따라 오르니 소나무가 잘려나가고 산 능선에 새로지은 정자까지 짓고 새로운 도로가 개설되어 등산의 맛을 반감시킨다.
여기가 해발1000M 이니 정상까지 200M 별 어려움 없이 오른다.

 

중간에 억새 밭이 인상적이나 별다른 특색은 없고 정상에 올라 서니 넓은 핼기장과 표지석이 보이고 360도 파노라마를 연출하는 일대 장관이 펼쳐 진다. 동북으로 덕유산 남으로 구름 위에 솟은 지리산과 서쪽으로는 장수의 팔공산과 사방 수 백리까지 바라 볼 수 있으니 전망 하나는 정말 좋은 곳이다.


장안산의 억새
서쪽으로 하산을 하니 계곡에는 댐 공사로 나무는 물론 산허리 까지 잘려 나가고 새로운 도로 개설을 하기 위해 무자비 하게 뭉개지고 있었다.
이날 이후 이 골짜기는 물속 깊이 잠기어 내 일생에 마지막 발걸음이 된다고생각하니 어쩐지 씁슬한 기분이든다.
고개를 하나 넘어 장수 읍내로 나오니 초가을 햇볕을 받아 단풍과 사과와 들국화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었고 논개 혼을 간직한 장수의 가을은 그렇게 익어 가고 있었다.

논개

거룩한 분노는
종교 보다도 깊고
불붙는 정열은 사랑보다도 강하다.
아! 강남콩 꽃 보다도 더푸른
물결 위에
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
그마음 흘러라.........................변영로.............

                         2001.10.

                                                   浮 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