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 황윤석 여사. 황상중
判事 황윤석 여사
1929년 ~1961년 판사 본관은 장수 영의정 황희의 후손이요. 문학박사 의돈의 딸이다. 서울 출신으로 어려서 부터 哲學과 文學에관심이 컷으나 부친의 권유로 法學을 지망하였다. 1946년에는 進明女子高等學校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法科大學에 입학하였다.
1952년에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이해에 시행하는 제3회 高等考試 司法과에 合格한후 1954년 서울地方法院 判事에 任命되니 여성으로는 우리나라에서 처음되는 여법관이었다.
1960년에 숙명여고에서 先驅女性으로 褒彰을 받았으며1961년에 女性問題 硏究委員會 實行委員으로 選任되었다. 이해 사월에 자택에서 疑問의 사인으로 32세를 일기로 逝去하니 여성법학도로서 그포부와 수완을 발휘 못하고 조서 한것은 애석한일이다.여성단체에서는 고인의 뜻을 추모하여 사법고시 준비생을 위한 윤석장학회를 설립하였다.
문헌:한국인명대사전.
황상중
자는 계통 호는 우곡 칠봉의 손이다. 百源 申碩蕃의 門人으로 閔老峯형제와 교유하였다. 현종2년 成均進士로 學文이 振重되었다. 특히 嶺南萬人疏라 하여 安東 柳稷과 高世章 등이 栗牛兩賢의 斥亨蔬를 올리어 儒論을 分裂시킬때 申碩순 申頌. 蔡河徵 朴매중. 등과 辨誣疏를 올려 이를 바로 잡았다.
광해11년 기미(1619)생 숙종6년 경신(1680졸)
黃鈺
황옥 경부. 폭탄사건 (독립의열단 사건)
황옥은 문경군 산북면 대상리 에서 출생하였다.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남달리 의협심이 강했으며 담대 하였다. 경기도 고등계 경부로 근무하면서 조국광복을 위한 큰일을 할기회만 노리고 있었다. 그러던중 중국에서 활동하던 의열단과 손잡고 거사를 계획하였으니 그 전모는 다음과같다.
1923년 3월14~15양일간에 걸쳐 황옥 김시현 이하 12명이 체포된 의열단 폭탄 암살음모사건이 발생하였다. 이 사건은 열단장 김원봉이 한국내에서 대규모의 파괴 암살을 단행려고 준비를 추진하여 폭탄 권총 실탄및 申菜浩가 작성한 조선혁명선언서 와 조선총독부 관리에게 라는 문서의 반입을 기도하고 있었다.
이 폭탄은 상해에 비밀폭탄 제조공장을 두고 제조기술자로서 이탈리아, 독일. 오스트리아. 등 외국인을 초빙하여 고성능으로 제조하였다. 1922년 7월 의열단원 김시현은 김원봉과 임시정부 외무차장 장건상과 협의한후 본격적인 항일 지하운동을 기도하여 국내로 잠입한 후 경기도 경찰부고등계 한인경부 황옥과 내통하여 거사계획을 추진하였다. 김시현은 임시정부 장건상으로부터 폭탄및 다량의 무기를 국내로 수송하라는 명령을 받고 다시 중국으로 들어갔다. 곧 김시현은 1923년2월 황옥을 유석현 정창섭 등으로 하여금 상해로 데려 오도록 하여 김원봉에게 소개시켰다. 1923년 3월7일 김시현 김재진 권동산 등은 황옥과 같이 폭탄 36개(건물파괴용 뇌관 6개폭탄뇌관 6개 방화용 17개 암살용 13개 )파괴용 폭탄장치 시계6개 권총5정권총실탄155발 경고문 (조선총독부 관리에게 ) 584매를 7개의 상자에 담아 백영무, 이현준등이 3개 황옥 김시현 유석현 등이 나머지를 가지고 만주 안도현 조선일보 지국장 홍종우의 집으로 갔다. 여기에서 일차로 홍종무와 백영무는 신의주로가고 2차로 황옥이 자신의 직분을 이용하여 신의주로갔다. 여기서 김시현은 대형폭탄 3개 소형폭탄5개를 서울의 조황에게 보내고 유석현과 황옥은 소형폭탄10개 권총5정과 탄약을 서울로 가져오고 나머지 대형폭탄3개와 소형폭탄 5개를 신의주의 조동근 집에 보관시켰다. 그후 김시현 김태규 이현준 이오길은 서울에 잠입하여 조황의 집에서 상해로부터 동지들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1923년 3월14일 일경이 이와같은 사실을 탐지하고 (단원중 김재진이 평북 경찰국 고등계형사 김덕기에게 매수되어 계획을 누설) 평북경찰국과 신의주경차서는 만주의 안동경찰서와 협력하여 관련자인 홍종우 외 5명을체포하고 홍종우의 집에 숨겨둔 각종폭탄 8개(신의주 조동근의 집에 숨겨둔 3개포함)와 조선혁명선언서 및 총독부 관리에게 라는 경고문660매를 압수하였다. 경기도 경찰부는 15일 관계자. 12명을 검거하고 각종 폭탄 18개 폭탄 장치용 시계6개 뇌관6개 권총5정 경고문249매 를 압수하였다. 한편 무기 반입과 더불어 많은 인사가 직간접으로 관련되어 체포 되었다. 황옥.김시현. 유석현, 홍종우. 박기홍. 백영무. 조광. 남영득. 유시태. 조동근. 이응희 조영천, 이상준. 유시창. 등 많은 인사가 체포되어 중형을 구형받았다. 경북사람으로 체포 되지않은 인사는 김지섭 권정필 황직연 김사용. 등으로 이사건은 특히 문경.안동,상주, 사람이 많이 관련되어 있고 이 계획이 성공을 거두었드라면 우리 독립운동사에 큰사건으로 청사에 길이 남을수 있었으리라. 생각하면 안타깝기 그지없는 일이다.
이상 장수황씨 인물사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