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수사

안좌게

qndns 2017. 2. 11. 15:49

安座偈 영단에 자리하시게 된 영가를 위로 찬탄하는 게송

 

我今依敎設華筵 내 이제 법도에 의지하여 자리를 마련하옵고

種種珍羞列座前 가지가지 음식을 자리 앞에 준비하였사오니

大小依位次第坐 모두 대소 차제에 의하여 자리하고 앉으시어

專心諸聽演金言 부처님의 말씀을 일심으로 경청하십시오.

 

; 석존께서 아난존자를 위하여 설하신 佛說救拔焰口餓鬼陀羅尼經

21-464의 내용을 가리킴

 

華筵;중생을 위한 불법이 베풀어지는 자리

珍羞; 맛이 썩좋은 음식. 보기 드물게 잘차린 음식

개요

수위안좌의 應頌에 당하는 내용으로 법답게 마련된 자리이며 정성어린

靈飯임을 영가 제위에게 전하여 반드시 靈壇에 자리하여 흠향하고 곧 베풀어 질 진언의 가지력으로 진정한 解脫에 이르게 될 것을 情的인 면과 理的면에서 염원하는 게송

구성과 내용

칠언 절구인 본게송은 기승전결의 형태를 보이고 있다.

기 인

我今依敎設華筵 내 이제 법도에 의지하여 자리를 마련하옵고-에서는

영가제위를 위한 제자의 用意周到함을 엿볼수 있다. 자식된 자 또는 齋者 로서 부모님이나 영가를 향한 효성이나 정성은 당연한 일이지만 그방법이 옳지못하다면 虛事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不孝가 되는경우도 있다.

여기서 베풀어지는 의식은 經敎에 의거한 것임을 밝혀 동참대중모두에게 을 갖게 해주고 있다.

승 인

種種珍羞列座前 가지가지 음식을 자리앞에 준비하였사오니-에서는 영가제위를 위한 재자의 적인 면을 느낄수 있다. 정성어린 祭物이것은 常用靈飯등에서 말하여지듯 하늘이나 땅에서 얻은 것이 아니라 오직재자의 一片誠心의 표출인 것이다.

또 일반적으로 음식을 대하고 앉았다. 함은 목표를 향한 출발이나 아니면 성취를 의미하는데 여기서는 후자의 경우로 볼 수 있다.

전 인

大小依位次第坐 모두 대소 차제에 의하여 자리하고 앉으시어-에서는

수위안좌진언 에 의하여 끊어져야 하는 미세한 번뇌가 아직 남아 있음을 알 수 있다. 大小가 있음은 아직 差別心이 있음을 의미하는데 정작 열반의경지에서는 용납 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결 인

專心諸聽演金言 부처님의 말씀을 일심으로 경청하십시오. -에서는 삼보의 가지력에 의한 진언이 곧 베풀어 짐을 말하여 영가와 대중으로 하여금 마음을 가다듬고 진지하게 임할 것을 주지시키고 있다.

 

구성과 내용의 주

日用三性之養 猶爲不孝也 -검을치緇門; 불경의 이름29洞山良介和尙辭親書

於此物物 不從天降 非從地聳 但從齋者之虔誠 流出羅列 云云

봉원사 요집 상83 常用靈飯

의식

바라지의 태징에 맞추어 小四物을 울리며 대중이 동음으로 창화한다.

이때소리는 쓰는소리 이다.

 

연구.

본게송 기 구에서 말하는 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가?

佛說救拔焰口餓鬼陀羅尼經 21-464를 말하며 이경은 석존께서 아난존자로 하여금 아귀보를 면하게 하시고 아귀들의 주린 고통을 면케하신 것으로 그 요점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아난존자는 어느날 恒河岸에서 焰口餓鬼를 만난 일이 있었다.그런데 그 아귀가 존자에게 하는 말이

3일후에는 그대의 목숨이 다하고 아귀로 태어난다. 고 하더니 이어 말하기를 이를 면하려면 무수한 아귀와 婆羅門 에게 먹을 것을 베풀고 또 나를 위해 삼보에게 공양토록하라 하였다.

이에 놀란 존자는 세존께 이러한 사실을 알뢰고 가르침을 청하였다. 세존께서는 한그릇의 음식으로도 무수의 아귀와 바라문에게 베풀 수 있는

陀羅尼를 일러주시니 곧 無量威德自在光明殊勝陀羅尼이다.

후일 이경이 중국의 梁武帝가 물이나 뭍()에 있는 고혼과 아귀에게 공양하는 법회 즉 水陸無遮平等齋儀儀文을 조성하여 재를 배풀게 되는 단서가 되었고 이로부터 영가를 위한 재가 베풀어지기 시작하였다.

 

본 게송 기구에서 말하는 華筵은 구체적으로 어떤 자리인가?

萬行, 萬德을 닦아 그 과로써 얻어지는 것이 佛位그 부처님으로부터 중생을 위한 설법이 베풀어지는 자리니 이를 華筵이라 한 것이다.

여기서 화연은 곧 앞에서 나온 冥筵을 가리키는데 동일한 장소가 어떻게

불리우는 가는 불법이 베풀어지는냐? 아니냐에 따라 달라진다.

 

망상이 없으면 곧 열반

마음은 마음을 알지 못하니 마음이 있어도 마음을 보지 못한다.

마음에 상이 일어나면 곧 요 마음에 상이 없으면 곧 열반이다.

공을 알고 보면 모든 것에 하찮은 상념이 없는 것이다.

거울을 삼기름으로 닦으면 저절로 영상이 보인다. 그 영상이 거울 속에 서 나오느냐. 아니다. 그것은 밖으로부터 거울 속으로 들어오는 것이냐 아니다. 기름으로 맑게 닦으므로 나타나는 것뿐이다.

불이 어디로 부터 온다는 말인가? 내가 어디로부터 왔다는 말인가?

스스로 불을 본 것이지 어디서부터 온 것이 아니다. 나도 역시 온 데가 없다. 나의 삼매로 본 것이다. 마음이 불이 된 것이다. 마음이 불을 보는 것이다. 마음이 스스로 마음을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것은 마음에 망상이 있기 때문이니 그 마음이 치심이다.

망상이 없으면 곧 열반이다.